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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집우집주

집우집주
출판사 : 궁리출판
출판년도 : 2005.01.29
지은이 : 서윤영
ISBN : 8958200243
책 쪽수 : 336 page
정가 : 13,500 원
 



“한국인들은 외형만 보고 자신들이 서구적 공간에서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한국의 전통건축은 우리 일상 속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인터뷰, 권재현 기자)
한국의 주거문화를 신화적 역사적으로 되짚어 본 ‘집宇집宙’(궁리)의 저자 서윤영 씨(37)는 아파트가 전통적 우리 주거공간과 너무 다르다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1970년대 아파트가 처음 세워질 때만 해도 거실이 한편에 위치하고 다른 한편에 침실들이 모인 구조였지요. 요즘 아파트들은 거실을 중심으로 침실과 부엌, 화장실이 해바라기 꽃잎처럼 퍼져 있습니다. 이는 마당을 중심으로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가 부채꼴로 자리 잡은 ㅁ자형 전통 한옥 구조를 닮은 것이죠.”


아파트 실내로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것은 온돌 주거문화의 산물이고, 아파트 베란다를 실내 공간으로 자꾸 개조하는 것은 마당이나 대청마루 공간에 대한 향수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 씨는 건축은 시대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고정된 원형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온돌은 화덕에서 출발해 굴뚝과 부뚜막을 거쳐 고구려 때 ㄱ자 연도(煙道)로 발전했고, 고려시대까지 방의 절반을 덮었기 때문에 여전히 입식 생활이 이뤄졌습니다. 방바닥 전체를 덮어 신발을 벗고 좌식생활을 하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서였죠.” 안채와 사랑채를 철저히 구별하는 한옥 구조도 조선 중기 사림파의 집권 이후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는 유교 덕목을 준수해야 한다는 사회의식의 산물이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안채와 사랑채의 구별이 가장 철저한 한옥이 역설적으로 환관(내시)의 가옥이었다는 점은 우리 주거공간이 사회문화적 산물이라는 점을 극명히 보여 줍니다. 반면 현대에 들어 집안구조에서 응접실이 사라지고 거실과 침실 등 사적 공간만 남은 것도 직장과 주거공간이 분리된 산업화의 영향이지요.”

수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마친 뒤 다시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서 씨는 2003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을 펴낸 뒤 건축 칼럼니스트로 저술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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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그 시대 지배담론의 반영" (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왜 우리나라에는 2층 이상의 적층 구조를 가진 한옥이 없었을까. 기술이 부족해서였을까. 통일신라시대 황룡사 9층 목탑을 지었다는 이야기로 미뤄볼 때 그렇지는 않은 것같다. 학계에서는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높은 집을 지으면 자손의 쇠퇴를 초래한다"고 전하고 있는 신라말 승려 도선의 `도선밀기'의 기록을 근거로 풍수 지리사상의 영향을 2층 집이 없었던 이유로 든다. 여기에 덧붙여 자기 신분 이상의 집을 짓지 못하도록 한 가사제한(家舍制限) 정책도 큰 몫을 한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온돌이라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난방 시스템을 층층이 들일 수 없었던 점도 그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이보다는 상업도시의 발달이 늦어지면서 인구와 도심의 고밀화로 인한 심각한 주택난이나 열악한 자연 환경, 혹독한 사회 환경을 겪지 않은 덕에 굳이 2층 집을 지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처럼 인간이 지은 건축은 지역성과 경제 상황, 특정한 목적 등에 순응하며 그 시대의 지배담론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흔히 사랑채와 사당, 종가 등을 전통 건축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조선 후기의 건축물일 뿐 오랜 전통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 중기 사림파의 집권 이후 잠시 꽃을 피웠다가 스쳐간 유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채는 사림의 인맥 형성과 붕당의 요람이었으며, 서당은 사림의 이념 교육 장치였다. 종가는 문중의 재산을 장남이 단독 승계하는 종법제 확립으로 조선 중기 이후 급속히 확대된 것으로 기존 사회 체제로 포섭하는 또 하나의 사회제도로서의 건축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건축 칼럼니스트 서윤영(37) 씨의 `집 宇 집 宙'(궁리)는 구석기 시대부터 조선시대 건축까지, 인간이 집을 짓기 시작한 이래 7천년 가까운 역사 속에서 출몰했던 집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자화상과 생활풍속을 추적한 건축 에세이다.

저자는 열다섯 살에 건축가가 되기로 뜻을 세운 뒤 한국외대에서 수학을, 명지대에서 건축을 공부했으며, 이후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며 월드컵 축구경기장, 영종도신공항, 고속척도 역사 등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저자는 벽체가 있어 바람을 막아주고 지붕이 있어 비를 막아주며, 바닥이 있어 몸을 누일 수 있고, 불이 있어 실내를 따뜻하게 덥힐 수 있다면, 생명 있는 모든 생물체가 아름답듯이 이 땅에 서 있는 건축은 모두 아름답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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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양식은 역사의 거울 (문화일보 정충신 기자)
한옥에는 왜 2층집이 없으며, 우리 민족이 실내에서 신을 벗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건축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건축의 역사성에 주목, 7000여년간의 한반도 건축 변천사를 개괄한다. 원래 ‘우(宇)’는 처마,‘주(宙)’는 들보를 뜻한다. 그래서 집은 ‘작은 우주’다. 인류 최초의 집으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천막인 ‘티피(Tipi)’를 닮은 구석기시대 막집에서부터 조선 중기에 정착하는 온돌문화에 이르기까지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건축사를, 생활사의 관점에서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통일신라시대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운 뛰어난 건축기술을 가진 우리 민족은 왜 2층 한옥 대신 단층을 선호하게 된 걸까. ‘산이 많아 높은 집을 짓지 않는다’는 풍수지리나, 주택 규모와 높이 등에 제한을 둔 ‘가사(家舍)제한’제도를 흔히 원인으로 든다. 저자는 2층 이상에서는 땔감을 들고 올라가 온돌에 불을 때기 어려운 구조와, 주택 고밀화를 요구하는 상업도시가 발달하지 못한 점을 주원인으로 꼽는다.

실내에서 신을 벗는 우리 민족 특유의 생활양식은 초기 철기시대 고구려의 쪽구들이 점차 바닥 전체를 데우는 온구들로 바뀌면서 나타난 특이한 현상이다. 온돌문화는 신발까지 바꿔놓는데, 목이 긴 부츠 모양의 ‘화(靴)’ 대신 한복에 신는 꽃신같은 ‘혜(鞋)’라는 독특한 신발을 만들기에 이른다. 인류창조 신화는 초기 집의 발달사와 떼놓기 힘들다. 진흙으로 집을 지은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등의 고대문명에는 어김없이 ‘신이 진흙을 빚어 인류를 창조했다’는 신화가 공통으로 발견된다. 이에 비해 울창한 침엽수로 집을 지은 북유럽에서는 ‘신이 나무를 깎아 인간을 만들었다’는 신화가 등장한다. 이것은 건축이 그 시대의 문화현상과 의식을 반영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건축의 역사가 체제순응의 역사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후기 건축물인 사랑채·사당·종가, 씨족마을 등에서 볼수 있다. 조선 중기 사림파가 집권한 뒤, 서원은 국립교육기관인 향교를 대신해 사림의 기득권 재생산 기반이 되고, 사랑채는 서구의 살롱처럼 인맥 형성과 붕당의 요람이 된다. 저자는 경주 톨게이트의 외관을 장식하는 팔작지붕과 솟을대문은 조선 중기 이후의 산물로, 신라의 도시에 조선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는 사실에 씁쓸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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