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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김영하| 마음산책| 2003.02.05 | 214p | ISBN : 8989351359
세상은 넓고 영화는 많다. 영화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영화 에세이도 흔하다. 어색한 자리의 단골 멘트는 `그 영화 보셨어요?`고 어색한 자리의 단골 장소는 `그 영화`를 보여주는 극장.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영화`라는 장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많은 사람들 보라고 쓰여진, 흔하다면 흔할 영화 에세이다.
그런데 이 책, 어딘가 다르다. 심오한 언어로 영화를 논하지도, 영화 감독의 대표작을 줄줄이 읊지도 않는다. `영화를 사랑하노라`는 고백은 커녕 `영화 얘기를 하는 척하면서 딴 얘기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작가의 관심은 영화 자체보다는 그 영화가 보여주는 삶과 인간에게로 향한다.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는다는 이 사람은 소설가적인 통찰로 영화를 읽고 그 안에 담긴 사회, 문화, 개인과 대중을 드러낸다. 더불어 유쾌한 입담으로 개인적인 추억담을 풀어 놓기도.
작가의 전작, 『굴비낚시』가 그랬듯, 이 책 역시 다양한 통로로 영화에 접근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무기로 엉뚱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그 영화 보셨어요?`라며 극장을 찾은 대부분의 관람객이 그렇듯이, 이 사람에게 영화란 진짜 중요한 얘기를 낚아 올리기 위한 하나의 미끼일 뿐이다.
만화가 이우일씨의 영화 패러디 일러스트도 놓칠 수 없다. `메멘토`의 주인공이 거울 앞에 섰는데 그의 몸에 낙서처럼 쓰여진 `외상값 15만원 월요일까지`… `화양연화`의 장만옥. 죽어 가면서 말한다. `내가 그를 사랑했다는 걸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면서도 교묘히 비꼬는, 혹은 공감하는 감성이 놀랍다. 모두 이우일씨 작품.
'영화를 열심히 보러 다니기엔 너무도 게을렀고 골방에 처박혀 책을 보기엔 너무도 발랄했으며 그렇다고 차분하게 음악을 듣기엔 너무도 산만했던' 작가 김영하의 두 번째 영화 에세이가 나왔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엉뚱하게도 멋진 판소리 한 자락을 감상한 기분이다. 물론 책의 내용이나 문투가 그렇다는게 아니다.(사실 정반대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유창하게 자신의 생각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작가의 모습이, 꼭 능숙한 판소리 창자 같다는 말이다. (그렇다. 그의 문장은 정말로 '유창'하다.)
'도날드 닭', '노빈손 시리즈'로 유명한 이우일씨의 그림은 또 어떤가. '화양연화'의 장만옥이 가슴에 화살을 맞고 눈물을 흘리며 '내가 그를 사랑했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대사를 남긴다.(표지 그림 참조) 앙코르 와트 사원에서 자신의 마음을 토해내던 그녀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저도 모르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그의 솜씨란!
그렇다. '뻔뻔한 소설가와 소심한 만화가의 이상한 만남'이라는 선전문구가 정말 딱이다. 아니, 이상하다기보다 모두에게 참으로 '행복한 만남'이다. 유연하게 흐름을 타는 김영하의 글솜씨에, 멋지게 추임새를 넣어주는 이우일의 그림 컷들. 서로 더없이 쿵짝이 잘맞는, 판소리 창자와 고수의 모습을 보는듯하다.
비영화인이 쓰는 영화 이야기가 대개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영화'보다는 '이야기'쪽에 방점이 찍힌다. 하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영화를 이야기함에 있어, 이 책 정도면 충분히 흡족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다.
4년 남짓 영화 관련글을 써온 작가답게, 그의 시선은 매니아와 일반 관객 사이 어딘가에 걸쳐진다. 그가 천상 '글쟁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엑소시스트'에 대한 글을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의 공포가 가족 해체가 진행 중이던 미국 중산층의 불안에 기반한 것임을 파악해내는 건, 영화를 좀 보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캐치할 수 있는 맥락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아버지, 어디 계세요?'라는 질문을 끌어내는 건 '작가 김영하'의 몫이다. '파인딩 포레스터'를 보고서는 '소설'은 '기본적으로 기억하고 기록하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문학양식'이기 때문에 '신동'이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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