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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6·25 직후의 모두 어려웠던 시절, 여러 가지 인생 경험과 생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당이 깊은 집에 모여 살았다. 전쟁 후의 삶의 모습은 비참했지만, 삶에 대한 의지는 굳건하고 아름다웠다. 전쟁통에 홀로 된 어머니가 자식들을 다독이며, 잘 키워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참 다부지면서도 맵고, 억척스런 모습이다. 6, 70년대의 어머니들의 모습이 모두 그러하였으리라. 미군들을 불러들여 파티를 여는 주인집의 모습이나, 한 팔이 없어 군고구마나 풀빵을 구워 파는 상이용사네, 적색분자로 찍혀 매번 형사가 드나들던 집, 양키 시장에서 군복 장사를 하는 집, 그리고 삯바느질을 해서 자식들을 키우는 주인공의 집 등. 한집에 모여 사는 이때의 모습들은 너무 흔해빠져서 이제 진부하기까지 한 우리 나라의 전후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가 들여다보이고 알게 될 수밖에 없는 마당을 사이에 공유하며 힐끔힐끔 남의 삶을 곁눈질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들은 때로 첨예하게 부딪히고, 때론 신랄하게 서로를 할퀸다. 그런 우여곡절을 주던 마당이 깊은 집은 하나 둘씩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나는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깊었던 마당은 기능적인 논리에 의해 흙으로 덮이고 만다.
'마당깊은 집'은 중심이 되는 거대한 서사가 없고, 많은 인물들의 다양한 사건이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길남이가 서사의 핵이 되고 있지만, 주변 인물들도 각기 만만치 않은 비중으로 배분되어 있다. 길남이를 초점에 준 '집중'과 주변인물들로 '분산'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작품은 시종일관 탄력과 재미를 유지한다. 등장인물의 내면을 살뜰히 파고드는 미시적 시각과 과거와 현재의 화자를 따로 두는 거리두기의 수법을 병행한 것도 독특한 점이다. 특히 1950년대의 생활풍속을 생생하게 재생한 세밀한 묘사는 가히 일품이라고 할 만하다. '마당깊은 집'은 '관찰과 묘사의 세공술'로 작가의 기억을 미학적으로 부활시킨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원일은 6·25 이후 50년대 초의 현실을 놀라운 기억으로 재생해내면서 치밀한 객관성을 확보해나가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추억을 통한 소년의 시점을 시종 유지해나감으로써 풍부한 서정성을 얻고 있다.
'마당깊은 집'에서 소년의 시점에 의해 관찰, 파악된 현실은 6·25 이후의 후방 현실이다. 소년(길남)은 고향 진영에서 남의 집에 얹혀 지내다가 대구로 와서 장관동 셋집에 있던 어머니, 누이, 두 남동생과 합류한다. 그 시간부터 바로 주인집 이외에도 네 가구의 피난민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그 네 가구는,
① 경기도 연백에서 피난온 경기댁으로 식구는 셋이었으며,
② 퇴역장교 상이군인으로 역시 식구는 넷이었고,
③ 평양에서 피난온 평양댁으로 식구는 넷이었고,
④ 가까운 김천에서 내려온 김천댁은 아들만 데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밖에 소설에서 위채로 불리고 있는 주인집 식구는 모두 여덟 명으로서, [마당깊은 집]은 출신과 구성, 직업이 서로 다른 스물두 명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사회이다. 소설은 우선 이 사회의 구성 요소 하나하나에 대한 정밀한 묘사를 행하면서, 소설 화자로 나타나는 소년의 시점에 포착된 인상을 적절히 배분한다.
'마당깊은 집'에 사는 여섯 가구는 6·25 이후 대구, 부산 등지에서 전개된 피난민의 삶을 우선 세태 묘사적으로 대변한다. 거기에는 피난민의 삶의 양태가 골고루 나와 있다. 경기댁의 딸 미선이 미국 부대에 근무하다가 미군과 결혼하고 도미하게 되는 일, 상이군인 준호 아버지가 고무팔에 쇠갈고리를 달고 다니며 행상을 하는 일, 평양댁 아들 정태가 월북 미수로 체포된 일, 그리고 소년 길남의 어머니가 기생들 바느질 품팔이로 살아가는 일 등등은 모두 6·25 이후 피난민 생활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삶은 모두 전쟁으로 인해 불구가 된 삶이다.
언뜻 보아 이 같은 성격에서 제외된 삶의 모습으로 주인집 식구들을 들 수 있겠으나, 경제적으로만 궁핍에서 제외되었을 뿐(궁핍은커녕, 오히려 전쟁 경기로 치부를 했다) 불구의 삶 형태라는 점에서는 제외될 수 없다. 주인집은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밖에 없는 피난민들에게 셋돈을 받아가면서, 자기 아들을 불법으로 미국으로 보내는, 6·25 이후 너무나도 많이 보아온 졸부들의 상처 난 정신상태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 부류는 한편으로 끼니가 간데없는 난민들이 신문팔이를 하며 밥을 훔쳐먹기까지 하는 현실 속에서 자신들은 춤 파티를 열고 관리를 초청하는 등 완전히 비뚤어진 길을 걸어간다. 이들은 피난민의 고생과 궁핍한 삶이 육체적, 물질적 차원에서의 상처라면, 정신적인 차원에서 보다 깊은 내면적 상처를 입게 된 자들이다.
'마당깊은 집'이 노상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밝다고까지 할 수는 없을지 모르나, 따뜻한 온기가 숨어 있다. 서로 갈등을 일으키면서도 도와 가는 피난민들의 훈기가 있고, 그 폐쇄된 공기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있고, 작은 에로티시즘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도 있다. 작가 김원일의 원숙을 느끼게 하는 이 같은 분위기는 냉전 체제의 종식이 강조되고, 전후 행태에서의 과감한 전환이 요구되는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에 특히 감명스럽게 다가온다.
그것은 김원일의 6·25 문학이 전쟁의 허위성을 파헤치고,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전쟁의 참화를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서도 결코 마멸되거나 쇠퇴하지 않는 인간성의 깊이를 증언하고자 하는 문학정신을 실제로 구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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