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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은 비밀수사대 세메르켓의 활약
파피루스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쓴 [바빌론 살인사건]은 람세스에 얽힌 음모와 갈등을 그린[람세스 최후의 비밀]을 그대로 이어간다.
때는 BC 1150년경, 바빌론을 엘람(후에 페르시아)국이 침입하여 지배한 지 얼마 안 된 혼란기이다. 엘람국의 공주와 왕자가 머물고 있던 한적한 농원(현재의 바그다드에서 80km 떨어진 바빌론)에서 참혹한 대학살이 일어났다. 농원에 있던 33명 전원이 손이 묶인 채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것. 그런데 발견된 시체들 중 오직 한 사람, 엘람국의 피니키르 공주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강제로 납치되었다면 몸값을 요구해올 텐데, 이 마저도 없는 상태. 사건이 오리무중에 빠져 있을 무렵, 파라오의 특명을 받고 바빌론에 도착한 세메르켓이 쿠티르 왕으로부터 이 사건의 의뢰를 받는다.
이 이야기는 세메르켓이 바빌론 특사로 급파되면서 시작된다. 세메르켓은, 이 이야기의 1편인[람세스 최후의 비밀]에서 람세스 3세의 음모를 사전에 밝혔던 인물. 그가 이제 다시금 이집트의 새로운 왕 람세스 4세의 명을 받아 파라오에게 봉사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찾으러 이집트를 떠나 바빌론으로 향한다.
독자들을 한순간에 고대 이집트의 정쟁 한가운데로 몰아넣었던 1편과 달리 2편에서는 무대를 고대바빌론의 화려한 문명 속으로 옮겨 21세기식 역사 추리소설의 묘미를 더해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복잡한 국제적 이해가 얽혀 있는 중동 ― 그 중에서도 고대 세계의 핵이라고 할 바빌론에서 이집트 비밀수사대 서기 세메르켓이 펼치는 활약은 바빌론의 신화만큼이나 환상적이다. 바빌론 살인사건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결합인 팩션(Faction)의 진수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히스토리(History)와 미스터리(Mistery)가 선사하는 판타지를 만끽하게 해 준다.
끝나지 않은 음모, 그 끝은?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를 통치했던 람세스 왕조, 인접국가에서 왕자들을 이집트로 유학을 보내는 게 관습일 만큼 그 당시 최고의 문명을 꽃피웠던 시기였다. 그러나 람세스 3세의 죽음 이후 이집트는 ‘황도의 몰락(람세스 4세~람세스 11세)’으로 치닫는다.
때는 기원전 1150년 경, 막강했던 권력자 람세스 3세의 치세가 끝나갈 무렵, 후궁 티야가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하지만 이 사건은 곧 발각이 되고 사건에 관련된 음모자들은 모두 재판을 받는다. 사건은 종결되었으나 람세스 3세는 끝내 운명하고 만다.
국내외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왕위에 오른 람세스 4세. 그는 병약하고, 그의 아들은 이제 겨우 6살이다. 사전에 암살 음모가 밝혀져 주모자들이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거나 추방을 당했지만 마야텀을 비롯한 티야의 자식들이 아직 살아 있다. 왕위찬탈에 대한 기운이 남아 있고, 권력 승계에 대한 궁중의 암투도 여전하다. 이러한 가운데 이집트를 둘러싼 중동의 지역적인 판도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병약한 람세스 4세는 어떻게든 왕조의 영광을 이어가고자 그의 생명을 연장시킬 묘안을 찾는다. 그가 찾은 해법은 이웃 나라 바빌론의 영험한 신상을 빌리는 것. 한편, 세메르켓이 사랑하는 아내 나이아는 죄인의 몸으로 이집트를 떠나 바빌론에서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한다. 세메르켓과 이혼한 후 그녀는 자신의 소망대로 귀족과 결혼했지만 새 남편이 왕권 승계를 둘러싼 음모에 가담한 사실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파피루스의 기록을 토대로 엮은 역사 추리소설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쉽게 끝나지 않았음도 암시해 주면서 추리소설의 매력까지 더해져 이야기는 더욱 풍성하고 이채롭게 전개된다.
고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국제적 관계에 대한 방대한 역사 자료가 생생한 인물과 탄탄한 구성을 무기로 1편에 이어 세메르켓이란 인물의 활약상을 입체감 있게 묘사했다. 주인공 세메르켓이 고대 7개의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펼치는 활약상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긴박감이 넘치는 장면과 장면으로 이어져 책에서 손을 못 놓게 한다. 역사적 사실 속에 갈등 · 음모 · 추리라는 소설적 매력을 가미해 팩션의 새로운 영웅을 창조해낸 것도 작가의 역량을 가늠케 하는 부분이다.
고대 도시를 여행하는 또 다른 즐거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대 도시 바빌론은 전설과 역사가 집합되어 있는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고대 문명의 세계가 눈앞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온다. 성서와 그리스 역사서를 비롯한 고대 문헌에 등장하는 공중정원, 바벨탑, 지구라트, 함무라비법전, 이쉬타르 신전 등이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호흡하기 때문이다. ‘파라오의 나라’에서 ‘6만여 신들의 나라’로 간 세메르켓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고대 바빌론의 영광과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전쟁의 상흔이 아직 남아 있는 성벽에서 사람의 머리를 가죽으로 씌워 공놀이를 하는 침략군 병사들의 모습, 각국에서 모여드는 교역선으로 붐비는 유프라테스 강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이쉬타르 신전에서 이뤄지는 매춘의 거래방식과 신전 안의 풍경, 여장 남자가수의 공연 장면, 병자들을 집단 수용관리한 당시의 의료제도를 엿볼 수 있는 ‘병자들의 거리’, 카시트 족이 정적(政敵)을 흔적도 없이 제거하기 위해 고안해 낸 ‘벌레의 방’ 등…. 세메르켓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고대 바빌론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화려하고 찬란했던 바빌론의 영광과 그 안에 감춰 있던 인간 욕망의 내밀한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다.
[람세스 최후의 비밀]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것을 재구성한 역사소설이며, 등장인물 역시 실존한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엘람에서 온 침입자 쿠티르 왕과 원주민 출신 지도자 마르두크는 실제 바빌로니아 왕좌를 놓고 권력다툼을 한 사실이 파피루스에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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