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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해 1976년
1976년은 중국인들에게 특별한 해다. 건국의 네 영웅 가운데 세 명의 거성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1976년 1월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숨을 거둔 이래 7월에는 홍군의 창건자 주더(朱德)가 작고했고, 9월에는 인민의 아버지 마오쩌뚱(毛澤東)이 83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그러나 1976년이 중국인들에게 특별한 이유는 단지 이들 세 지도자의 죽음 때문만은 아니다. 그 해 7월 28일 새벽 3시 42분 중국 최대의 중공업도시였던 인구 100만의 도시 탕산(唐山)에 규모 7.8의 강진이 일어나 24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것이다. 1976년의 탕산대지진은 2004년 12월 동남아시아에 지진해일(사망 283,000명)이 발생하기 전까지 인류의 지진관측사상 최대의 인명 피해를 가져온 대재난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중국 르포르타주 문학의 백미
??유미유동: 청나라 정부의 조기유학 프로젝트??의 저자로 국내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이 책의 저자 첸강(錢剛)은 당시 23살의 나이로 지진 현장에 파견되어 각종 구호 활동과 취재 활동을 벌였다. 이후 10년 동안 탕산대지진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고 생존자들을 심층 취재하여 1986년 이 책의 원서 ??탕산대지진??을 펴냈다.
책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1986년 대륙과 홍콩에서 초판이 동시 출간되었는데, “중국 르포르타주 문학의 백미”라는 찬사와 함께 출간 즉시 대륙에서만 공식적으로 86만 부가 팔려나갔다. 이른바 ‘해적판’이 정규 출판물 시장의 몇 배에 달할 만큼 비대해져 있는 중국 출판시장의 특징을 감안할 때 이는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홍콩에서는 현재까지 22판이 발행되었고, 대륙에서도 1996년과 2005년 개정판이 꾸준히 발행되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이끄는 글 “나, 그리고 나의 탕산”은 1989년부터 홍콩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고, 제3장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2003년부터 중국 쟝수성(江蘇省)에서 발간한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었으며, 영문판은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학과 코넬대학에서 신문습작과정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대재난이 남긴 것
이 책이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될 만큼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까닭은 단순히 대재난의 고통과 참혹상을 생생히 기록했기 때문이 아니다. 저자의 시야는 결코 대재난이 가져온 공포와 처참함이라는 표피적 현상에 머물지 않았다. “가슴 쓰리도록 아름다운 것, 우리를 애타게 할 만큼 친근한 것, 소름이 돋을 만큼 꿋꿋한 것, 뛰쳐가 잡아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연약한 것……이 모든 인간의 성품이 여기 모여 있다”는 저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오히려 대재앙 앞에 놓인 그 복잡한 인성을 통찰했고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의 비밀을 발굴해냈다. 이를 통해 대지진의 참상을 좀더 깊이 있게 드러냈고 독자로 하여금 작품의진실성과 소중함에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저자는 절망적 공포를 이기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을 연발할 뿐만 아니라 죽음 앞에서 의연하게 운명을 받아들인 정신적 승리자들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대자연이 보낸 갖가지 전조 현상을 무심코 지나쳐버린 인간의 우활함을 조롱하는 동시에 지진을 예지하기 위해 인간이 대자연과 벌이는 수천 년의 사투에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던 구조대와 탕산 시민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면서도 각종 약탈과 폭동에서 드러난 인간의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탕산에서 지진을 겪은 51명의 외국인들, 교도관과 경비병을 구하고 시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간 교도소의 죄수들, 부서진 악기를 메고 폐허를 향해 희망의 노래를 들려준 맹인 악사들의 사연을 통해 대재난 앞에서 인간은 모두가 고귀한 존재임을 역설한다. 또한 대재난의 참사를 이념 교육의 장으로 이용하고, 자력갱생이라는 허울로 외국의 원조를 일체 거부했던 중국 정부를 향해 일침을 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지진과 인류
지난해 12월의 쓰나미 참사와 올 10월에 발생한 파키스탄 대지진으로 인해 우리 나라에서도 어느 때보다 지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모 방송사에서 일본 도쿄 지역에 상상을 초월할 대지진이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는 내용이 방영되어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역사상 지진에 의한 최대 피해는 1556년 중국 산시성에서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830,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규모 3.0 이상의 지진이 100,000회 이상 발생하고 있으며 건물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규모 5.0 이상의 지진만도 연 100회 정도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1978년부터 2000년까지 23년간 총 469회의 지진이 발생해 연평균 약 20회의 빈도를 나타냈다.
인간은 지진을 이해하는 데, 온갖 대자연의 수수께끼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천 년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엄청난 피의 대가를 치렀고 또 치르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온 지진은 수많은 연구자들의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오늘날 인류의 눈은 이미 수만 광년 밖의 천체를 내다볼 수 있게 되었지만, 자기가 생활하는 이 행성은 약 13km의 ‘깊이’까지밖에 알지 못한다. 러시아 콜라반도의 무르만스크항 근처에서 시추한 12,262미터 깊이의 홀(Kola SG-3)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이다. 이것이 바로 현실이다.
지진이 일어나는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이루어놓은 문명의 이기들은 한순간에 쓸모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래서일까. 벌써 30년 전의 일이지만 저자가 묘사하는 재난 현장의 갖가지 모습들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장구한 지구의 역사에서 30년 세월은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할 것이다. TV 화면으로 전해지는 무너진 건물과 갈라진 땅, 길거리에 널린 시신들과 고통에 신음하는 부상자들의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들어가보고 싶은 독자라면, 그래서 참사의 피부 속을 깊숙이 헤집어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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