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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깊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쉽게 쓴 철학읽기
헤겔 이래 그림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설명한 철학자들은 많이 있었지만, 이 책은 특히 하이데거와 반 고흐, 사르트르와 마티스, 푸코와 벨라스케스, 데리다와 쉬베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회화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 바 있는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어 철학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보다 폭넓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저자는 이 영화에서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 데리다의 주요 철학 개념이 영상화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철학적 개념들을 그림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후기구조주의 철학의 대표 격인 푸코와 데리다, 그리고 실존주의의 대표적 사상가인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비록 그림을 설명의 대상으로 택하고 있지만, 그들의 사유는 미학의 범주에 속한다기보다는 그림을 통해 철학자 자신의 기본적인 철학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언어학과 형식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들에게서는 미의 형식적인 관심이 엿보이는 반면, 사물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실존주의자들의 관심은 역시 내용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푸코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푸코는 고전주의 시대(17세기 후반부와 18세기 전체)의 에피스테메인 재현 안에 인식의 주체인 인간의 모습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술의 자기반영성이라는 포스트모던 미학의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예컨대 보르헤스의 소설이나 설치 미술을 포함한 모든 비구상적 미술이 이제는 더 이상 외부의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문학이나 미술만을 참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현의 재현(그림 그리는 장면을 또 그렸으므로)이라는 <시녀들>의 그림에서는 필연적으로 가시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푸코에게서 인식의 두 요소인 가시성과 언표(言表)의 대립항을 발견하고, 가시성에 대한 언표의 우위를 확인한 것은 들뢰즈였다. 데리다에게서 가시성의 문제는 그림을 그릴 때 모델과 화판 사이에서의 화가의 눈멂이라는 주제로 떠오른다. 그는 선(線)긋기인 드로잉이 원초적 미메시스의 방법이라는 점에서 드로잉이 모든 예술의 기원이라고 말하고, 모든 예술의 기원에는 눈멂이라는 주제가 있다고 했다. 벽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를 윤곽선에 따라 벽에 그리고 있는 쉬베의<디뷰타드 혹은 회화의 기원>은 이러한 주제를 탁월하게 드러내 주는 그림이다. 드로잉의 선은 안과 밖의 경계선이라는 점에서 칸트가 고대 희랍어에서 빌어온 파레르곤(parergon)의 개념으로 이어진다. 파레르곤은 그림의 액자처럼 작품(ergon)의 밖에서 작품을 보충해 주고 있는 부수적인 어떤 것이다. 칸트는 조각상에 걸쳐진 옷, 건물 밖의 열주(列柱), 그림의 액자 혹은 당초문의 가두리 장식만을 파레르곤의 예로 들었지만 데리다에게서는 이것이 모든 선(線), 모든 경계선, 모든 사각형의 프레임으로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우리가 ‘액자 소설??이라고 말할 때의 그 액자 효과(mise en abime)로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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