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을 화두 삼아 한국 현대미술을 조망한 책으로 100명의 한국 현대작가와 104점의 예술작품들을 망라하고 있다. 기존의 관습적인 시선을 버리고 독자적 시선으로 작업을 해나가고 있는 작품들만을 담고 있으며, 한국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작가들의 진지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우리 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려 했다. '식물성’에서 우리 미술이 갖고있는 위기의 돌파구를 찾는 한편, 무분별한 욕망, 타인을 살피지 않는 이기심, 끝없는 탐욕 등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정화시켜줄 수 있는 힘을 발견하고여 서구중심적, 서구지향적 가치관에서 동양적인 가치관으로 시선을 돌려 동아시아인들의 세계관과 우주관 안에서 미술의 의미를 새롭게 추출해내려는 의지가 담긴 책이다.식물성을 화두로 삼아 우리 미술을 읽는다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로 다수의 전시들을 기획했었으며, 현재 미술평론가이자 경기대학교 교수인 박영택이 『예술가로 산다는 것』(2001, 마음산책)에 이어 두번째 저작 『식물성의 사유』를 펴냈다.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기행하며 쓴 산문 『예술가로 산다는 것』에서 그들의 격정적인 삶과 작품을 통해 삶과 예술의 의미를 되새겼다면, 『식물성의 사유』에서는 식물성을 화두로 삼아 한국 현대미술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가 식물이라고 부르는 ‘풀, 꽃, 씨앗, 나무, 사군자’와 더불어 ‘숲, 산, 땅, 새, 하늘, 바다, 돌, 정물, 풍경’처럼 식물성에 대한 사유, 더 나아가 자연과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열네 개의 항목을 통해 우리 미술의 진경을 펼쳐 보여준다.
기존의 소재주의로만 공들여 그려진 그림들과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작품들이 어떤 변별성을 갖는지, 그리고 그 작품들이 자연과 식물을 매개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 진지하게 사유해보는 자리가 되어줄 것이다.
왜 식물성인가? ─ 새로운 인식의 패러다임을 열어주는 매개로서의 식물성
“미술의 위기가 주창되는가 하면 미술의 진정성, 혹은 미술의 의미가 부단히 탈색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전통과 현대의 갈등 속에서 상실된 우리 미술의 본래의 뜻과 지워진 의미를 상기해보면서 새삼 이 격물치지의 자세와 사유를 통해 미술을 다시 시작해보는 근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그 실마리가 바로 주변에 산재해 있는 한 떨기 꽃이나 하찮은 풀과 나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식물성을 생각한다」 중에서)
박영택은 바로 ‘식물성’에서 미술의 위기의 돌파구를 찾는 한편, 무분별한 욕망, 타인을 살피지 않는 이기심, 끝없는 탐욕 등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정화시켜줄 수 있는 힘을 발견하고 주목한다.
인류의 역사는 식물성과 짝을 이루는 동물성의 에너지를 발판으로 문명을 이루고 발전을 거듭해왔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만들어내고, 정복하고, 인간에게 좀더 안락하고 편리한 삶을 일궈나가는 과정에서 부작용 혹은 반작용이라 말할 수 있는 엔트로피 또한 증가해왔다. 근래 들어 환경과 생태계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는데 ‘동강댐 건설’이나 ‘새만금 간척사업’과 같이 개발과 환경보존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도 예외가 아니다. 이처럼 서구 중심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 경제개발논리에 의해 생태계가 파괴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박영택은 ‘식물성’을 화두로 삼은 미술작품들을 통해 남에게 상처주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생명을 일구어나가고, 인간과 자연을 치유하는 ‘식물성’의 긍정적인 힘을 역설하고 있다.
식물성에 주목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고 내면적으로 깊이 결부시켜 파악하는 관점이다. 이는 농경사회에서 비롯된 동아시아인들의 자연 관찰과 숭배, 우주만물이 모두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생태주의, 노자와 장자가 말하는 도(道), 불교의 경전 속에 녹아 있는 생명존중의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
박영택은 서구중심적, 서구지향적 가치관에서 동양적인 가치관으로 시선을 돌려 동아시아인들의 세계관과 우주관 안에서 미술의 의미를 새롭게 추출해내고 있다.
‘동양인의 마음과 정신 속에서 철학적, 인생론적 뿌리인식을 심어준 것들, 그러나 서양적, 과학적 세계관 앞에서 힘없이 스러져간 것들, 해서 더 이상 우리들 삶에서 의미문맥을 형성하지 못한 채 장식적이고 습관적인 미술의 초라한 소재로 전락한 것들을 다시 생각’함으로써, 한국 미술계를 다시 돌아보며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앞만 보고 달리느라 지치고 변질돼버린 우리의 삶 속에 내재돼 있는 독성을 제거하고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식물성’ 안에 열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