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살에 목수의 길로 들어선 뒤 우리 고건축의 생명과 아름다움을 자신의 목숨처럼 보살피며 살아온 신응수 도편수가 산문집 『목수』를 출간했다. 나무의 생과 나무를 다루는 업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는 목수의 생을 진솔하게 담아낸 산문집이다. 평생을 나무에 기대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목수의 생은 나무의 생과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산문집을 읽는 동안 우리는, 목수가 다만 나무를 잘라 연장을 만들고 가구를 만들고 집을 짓는 이가 아니라, 제 명을 다 하고 헛되이 사라져갈 나무를 값있게 살려내는 일을 하는 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목수는 나무 한 그루를 구하는 마음으로 천년을 산다.
궁궐목수는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나무는 우리 궁궐의 뼈대다. 천년 궁궐을 짓기 위해서는 천년의 세월을 견디어 낼 수 있는 나무가 필요하다. 천년의 세월을 견디어낼 만한 나무를 찾지 못하면 천년 궁궐을 지을 수 없다. 궁궐목수는 오래 전부터 나무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무를 다루는 법을 통해 삶과 사람을 다루는 법을 깨우쳐주고 싶었다. 나무에 깃든 신성을 깨우쳐 주고 싶었다.
삼백 년의 고독을 홀로 버텨낸 나무 앞에서 궁궐목수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궁궐목수는 오늘도 강원도의 첩첩 산으로 나무를 찾아 나선다. 나무들 사이에 겸허하게 서 있는 궁궐목수는 천년 고독을 견디어낸 한 그루의 나무 같다.
삼백 년 고독을 저 홀로 견디어낸 한 그루의 나무를 만나다
궁궐목수는 시詩를 읽듯 나무를 만난다. 온몸의 감각을 열어놓고 자신을 삼투시킨다.
나무의 결을 어루만지고, 나무의 냄새를 맡고, 나무의 빛깔을 바라보고, 나무의 굽이에 감탄을 내뱉는다. 거무스름하게 그을리고 굳은살이 대못처럼 박힌 손으로 나무의 옹이를 어루만진다. 『목수』를 읽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나무 한 그루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름다움에 대하여
오랜 시간을 안으로 안으로 견디어내며 자아낸 나이테를 본 적이 있는가. 고요한 수면 위로 번져 나가는 물결처럼, 잔잔하게, 번져나간 나이테의 아름다움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비할 수 있을까. 바지런하게 살아온 사람의 지문처럼 구불구불한 결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나무의 맨몸을 바라보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황홀한가.
인연에 대하여
깊고 깊은 숲 속에서 마음에 드는 한 그루의 나무를 만나는 일은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이 인연을 맺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이 있다지만 나와 인연이 닿는, 나와 마음이 맞는 닿고는 사람 하나 만나기가 어디 그리 쉽던가. 인연이 닿는 나무를 찾으러 목수는 산으로 간다.
겸손에 대하여
나무는 태어나고, 평생 살아온 자리에 선 채로 죽음을 맞는다. 그래서 나무의 죽음에는 처연한 데가 있다. 게다가 늙은 나무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아간다. 나무는 대개 위에서부터 서서히 죽어 내려가기 때문이다. 수분을 흡수하는 뿌리는 조금 늦게 죽고, 영양공급이 잘 안 되는 잎 부분은 뿌리보다 먼저 말라죽는다. 나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지 목수는 알 길이 없다
마음에 대하여
고요하게 숨을 고른 뒤 찬찬히, 눈 먼 이가 혈(穴)을 짚어가듯 나무의 마음을 읽는다. 성질이 제멋대로인 나무를 함부로 깎아놓으면 쉽게 비틀어질 수 있다. 제 성질대로 휘어버린 것을 반대로 켜면 나중에 옆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제 생긴 대로 놔두지 않고 왜 목수 맘대로 반대로 켜냐고 심통을 부리는 것 같다. 제 생긴 대로 제 마음가는 대로 따라가 주는 것이 만만하지 않다.
고독에 대하여
깊은 산 속에서 저 홀로 외롭게 자란 나무가 곧고 튼실하다.
나무도 외로움을 견디며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어 더디게 자란 것이 끝내는 재목이 되는 법이다. 세상과 단절되어 고독을 극복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힘과 풍모를 갖춘 재목이 된다.
쓰임에 대하여
산으로 산으로 헤매다가 곧바로 자란 굵은 나무를 만나면, 요놈은 기둥감, 하고 점찍어 둔다. 적당히 휜 놈을 발견하면 그것은 대들보로 쓰리라 마음먹는다. 한 3~4미터쯤 곧바로 올라가다 휜 놈은 추녀의 곡선을 내는 데 안성맞춤이다. 또한 삼사십자가 처음부터 반달형으로 휜 나무는 조로평고대로 쓰리라 마음을 정해놓는다. 이들은 다 운 좋게 만난 곡재들이다. 곧은 나무보다 적당히 휜 놈을 만나기란 훨씬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