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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이후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다원화되고 디지털화되면서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하여 최근에는 아나키즘을 소개하는 책들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아나키즘을전반적으로 설명하는 개론서, 아나키즘의 역사를 조명하는 책 및 근대 아나키스트들의 주요 저서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그 논의도 근대 아나키스트들이 내린 아나키즘에 대한 정의나 진술, 설명 등을 반복하고 있을 뿐, 그보다 진전된 논의를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기존에 소개된 아나키에 관련된 책과는 완전히 달리, 아나키즘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한 차원 끌어올리며 아나키의 가능 근거와 생존 가능성을 정치철학적으로 정밀하게 분석, 논증하고 있다. 즉 ‘아나키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없더라도 아나키가 생존할 수 있는지, 만일 생존할 수 있다면 아나키가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국가가 없이 살려면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 책은 근대 아나키스트들의 이상이었던 ‘국가가 없는 아나키 사회’라는 지점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이래 인간은 거의 모든 시기 내내 국가가 없는 원시적인 공동체에서 살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평등주의적인 아나키 공동체에서 거의 4, 5만 년을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서유럽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난 몇 세기 동안에 그런 공동체들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즉 그것들은 국가에 의해서 흡수, 침식 혹은 파괴된 것이다.
이 책은 사람들이 국가가 없이 살려면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공동체가 개인적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거나 심지어는 해가 된다는 자유주의자의 주장에 맞서서 공동체를 옹호한다.
공동체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필요하다. 만약 국가가 없이 살거나 국가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줄이고자 한다면 우리는 공동체를 되살리거나 다시 재건해야 한다.
아나키와 공동체
이 책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두 축은 “아나키”와 “공동체”이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국가가 없는 공동체에서 아나키 사회가 존속해왔고(예를 들면 원시공동체) 앞으로도 존속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아나키는 통상 국가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정의를 좀 더 엄밀하게 확장하여 제한된 강제력의 집중이 있지만 집단적 결정을 결코 강요하지 않는 사회, 즉 강제력의 집중과 정치적 전문화(재판소나 초기 형태의 입법의회 같은 역할을 하는 집단)가 모두 최소한도로 이루어지는 사회를 아나키 사회라고 부른다. 이와 관련하여 이 책은 국가, 권력, 강제력, 설득, 헌신, 권위, 호혜성, 평등, 자유 등 아나키의 분석에 주요한 개념들을 철학적으로 엄밀하게 분석한다.
또한 이 책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공통적인 신념과 가치를 가지며,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가 직접적이고 다면적이며 호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공동체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보고, 이러한 공동체의 경험적인 사례인 국가가 없는 원시공동체, 유사 아나키적인 의도적 공동체, 그리고 폐쇄적이고 집단적인 농민공동체들을 상세하게 분석, 설명한다.
국가가 없는 사회에서의 사회질서의 유지
이 책은 아나키의 생존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은 아나키의 구성원이 신체와 재산의 보호라는 기본적 의미에서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사회질서라는 공공선을 제공하기 위해 국가라는 존재의 필요성이 정당화된다는 일반적인 견해에 반대하여, 국가가 없이도 사회질서의 유지가 가능하며(원시공동체가 그것을 증명한다),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공동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을 때만 사회질서가 유지된다고 본다. 즉 사회질서는 국가가 없는 사회에서는 오로지 공동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이 사회질서의 확보를 보증하는 유일한 수단이자 국가에 대한 대안이라고 보는 자유방임적 자유주의자(요즘의 신자유주의자)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시장 사회에서의 사회질서는 국가와 공동체, 시장의 결합에 의해서만 유지될 뿐 시장 자체에 의해서는 성공적으로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나키와 평등
자유주의적 확신에 의거한 전통적 주장에 의하면, 경제적 평등이나 대체적인 평등(예를 들어 자원의 평등주의적 분배)은 국가가 부재할 경우에는 오래 존속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국가가 부재해도 공동체 내에서는 대체적인 경제적 평등이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공동체는 평등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평등이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원의 분배 문제는 이차적이며 도구적인 것이다.
실질적으로 우두머리가 없는 사회, 추장제 사회, 원로 체제 사회, 농민공동체, 19세기와 20세기의 유토피아적 공동체와 이스라엘의 키부츠, 시투피를 포함한 의도적 공동체에서는 불평등이 거의 없었다. 그런 사회에서 불평등이 심화되지 못한 것은 사회를 균등하게 하거나 평등하게 하는 조정과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며, 개인이 이러한 조정과 관습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행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사회통제 수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혜성 및 인정과 불인정에 기초한 사회통제는 국가가 없는 사회와 거의 국가가 없는 사회에서의 불평등의 증가를 제한하는 주요 수단이다. 이러한 통제가 작동하는 데 광범위한 참여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통제는 그 자체로도 평등주의적이다. 그리고 국가가 없을 경우 이러한 통제는 공동체에 의해서 효과를 거둔다. 그렇다면 아나키 사회 역시 공동체로 규정될 경우, 대략적인 평등은 아나키에서 존속할 수 있게 된다.
공동체와 자유
앞에서 본 대로 공동체는 국가의 집중된 강제력의 대안들인 사회통제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사회적 통제와 그 이용은 국가의 통제보다는 더 평등주의적이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목적을 위해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통제이다. 그렇다면 소규모 공동체에서 개인의 자유가 번창한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유주의 진영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공동체가 사실상 자유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공동체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공동체가 개인의 자유와 양립할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중심적 이념인 자유가 공동체와 맺는 관계는 거의 공리처럼 자명하거나 자유라는 말 속에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대립되는 입장들 속에서, 이 책은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공동체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통해, 공동체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처럼 자유가 공동체에서 최대화된다거나 오직 공동체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공동체와 자유는 양립 가능하다고 본다.
어울리는 짝: 아나키, 자유, 평등 및 공동체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공동체적 특성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아나키의 생존 가능성이 좌우된다. 공동체에서 사회질서는 국가가 없이도 유지될 수 있다. 공동체가 요구하는 대체적인 경제적 평등 역시 공동체에서 유지될 수 있다. 공동체가 개인의 자유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닌 한, 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공동체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의 주요한 이상, 다시 말해 아나키, 자유, 평등 및 공동체는 서로 어울리는 짝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원시적인 아나키 공동체가 이웃과 평화롭게 지냈다는 사실로 볼 때 오늘날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의 작은 규모의 아나키 공동체들은 침략과 착취의 가능성이 제한될 것이기 때문에 공동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국가 간에 발생하는 문제보다 훨씬 덜 심각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작은 아나키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세계가 지금의 세계정세보다 덜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강력한 국가들로 가득 찬 오늘날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근대 아나키즘의 이상인 국가 없는 아나키 사회의 가능 근거와 그 생존 가능성을 면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작고 안정적인 공동체에서는 자유와 평등이 확보되며 아나키 사회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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