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부터 발간된 기획 시리즈물『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2005년도판이 출간되었다. <진정한 문학성과 작가의 예술혼이 짙게 배어 있는 좋은 소설을 작품의 완성도와 새로움의 성취도를 기준으로 선정, 소개하여 독자들의 올바른 문학관을 확립시킨다>는 취지로 발간되고 있는 『2005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은 올해로 열세 번째 권이 된다. 이번 작품집에는 한해 발표된 작품들 중 가장 완성도 높은 문학적 성과를 이룬 열 편을 수록하고 있다.
『2005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각종 문예지(월, 계간)에 발표된 신작 중 단편소설들을 대상으로 하여 현장비평가 다섯 명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특정한 이념에 상관없이 선정, 수록했다고 한다. 올해에는 박완서와 같은 비교적 원로 작가부터 김중혁, 정이현, 김애란 등과 같은 이제 막 등단한 신인 작가들의 작품들,조성기 등과 같은 80년대의 대표적 작가들과 윤대녕, 구효서 등 90년대의 대표적 신세대 주자들의 작품들이 모여 있다. 각 작품에는 선정위원들의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1차 후보작 45편을 일별하면, 대략 세 가지 종류의 소설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그룹은 가족과 친지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생의 고달픔과 우여곡절과 사연을 들려주는 전통적인 서사들이다. 두 번째 그룹은 사랑과 불륜과 허영과 욕망의 드라마를 주로 여성의 목소리를 빌어 들려주는 서사들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룹은 전혀 새로운 감수성과 문장으로 낯설고 당혹스런 반 전통의 서사들이다.
역시 안정된 수준을 보여주고 또 의미 있는 독서체험을 하게 해주는 작품들은 첫 번째 그룹에 속한 것들이 다수이다. 특히 몇몇 작품들은, 90년대 작가들의 작품에는 깊이가 없다라는 불만을 일소시켜줄 만한 의미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만족스런 문학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다소 답답하고, 늘 보던 것이란 느낌을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두 번째 그룹의 작품들은 재미도 있고 재치도 있고 또 어떤 경우는 인간 내면의 심연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늘 그렇고 그런 스타일이고, 그런 목소리들이다. 제일 당혹스런 것은 세 번째 그룹의 작품들이다. 도대체 이런 작품을 누가 읽으라고 왜 쓰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떤 종류의 새로운 에너지가 느껴지고 또 감각과 상상력의 새로움은 있지만,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소설이 무엇인가, 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촉구하는 작품들이라 하겠다.
선정자들은 소설문학의 지형도를 대체로 수용해서, 세 가지 종류의 작품들을 두루 선정하려고 했다. 물론 작품의 수준에 대한 논란이 선정자들 가운데서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종 결과는 당위보다 현실이 더 많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일반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2005년의 좋은 소설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005년의 한국소설의 지형도를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2005년의 소설계에서도 문학의 혼란과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혼란과 변화가 우리 소설문학에 새로운 길과 지평을 열어줄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 새로운 길과 지평이 문학을 살릴 것인지 고사시킬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