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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출판사 : 소나무
출판년도 : 2003.01.29
지은이 : 김영두
ISBN : 897139319
책 쪽수 : 608 page
정가 : 25,000
 


한 마디로 너무나 좋은 책이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편지 모음. 조선조의 걸출한 인물이며, 유명한 사단칠정 논쟁의 주역들이 주고 받은 편지가 이렇게 읽기 쉬운 책으로 나오니 무척 반갑다. 이들의 편지는 철학이나 국문학 관계자들의 연구 논문에서나 인용될 뿐, 일반인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출간된 적은 없었다. <퇴계집>과 <고봉집>이 민족문화추진회의 고전국역총서 시리즈에 끼어있긴 하지만, 번역이 예스러워 일반인이 읽기에는 불편하고, 또 편지만이 아닌 다른 글까지 모두 포함된 문집이라 역시 무겁다. 하지만 이 책은 보기 쉽고 읽기 쉬운, 그러면서도 격조를 잃지 않은 가작이다.

책을 펼치니 화면이 단정하고 편안하다. 맨 앞으로 가서 목차를 살핀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 중에서 일상적인 얘기를 담은 편지들이 1부를 이루고 학문적인 쟁점을 다룬 것은 2부에 실었다. 분량은 1부가 2/3, 2부가 1/3이다. 목차만 살펴도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존중하고 아꼈는지 보인다. 성균관 대사성이라는, 요즘으로 치면 서울대 총장 쯤에 해당하는, 높은 직책에 있던 58세의 이황과 이제 막 과거에 합격한 32살의 청년 기대승이 이처럼 나이와 공간적 한계를 넘어 13년간이나 깊은 영혼의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경이롭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한시의 한 구절 같은 목차의 소제목들을 지나 본문으로 접어든다. 깔끔한 편집에 군데군데 붉은 색 잉크가 포인트를 이루고 있다. 각주를 표시한 숫자와 본문 끝에 찍은 도장이 붉은 색이다. 사진에 조예가 깊은 편집자가 특별히 붉은 색 잉크를 써서 화면에 포인트를 주었다한다. 매력적이다.

드디어 첫 번째 편지, 편지의 제목은 <덕을 높이고 생각을 깊게>라 하였다. 본문 끝에 퇴계의 도장이 찍혀있으니 퇴계의 편지다. 기대승이 과거에 급제한 그 해 겨울에 보낸 편지다. 자기보다 나이가 26살이나 어린 사람에게 이토록 겸손하고 삼가하는 문장을 쓴 퇴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문장에서 고귀한 품격이 느껴진다. 게다가 번역 또한 참으로 빼어나다. 번역자가 얼마나 깊은 애정과 존경을 담아 번역했는지 독자에게까지 전해지는 그러한 번역이다. 방정하되 부드럽고 유장하되 흐트러짐이 없다.

1부는 5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으며 연대순에 따랐다. 두 사람은 첫 만남의 감회에서부터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처세의 어려움, 시에 대한 감상, 관직과 벼슬에 대한 생각, 질병과 운명, 귀향과 죽음 등 온갖 주제에 대해 서로의 심중을 털어놓는다. <깊은 물과 높은 골짜기에 임한듯> 조심하는가 하면 <이별의 정이 꿈결인 듯 되살아나>아쉬워한다. 2부는 학문을 논한 편지들로서 그 유명한 사단칠정에 대한 논변이나, 태극의 개념, 상례와 제례, 기타 왕실의 전례 등을 논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묘갈명을 실었다. 책 뒤에는 연표와 두 사람에 대한 소개도 들어있다.

이 책은 파묻혀있던 옛 문헌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어 출간 의의가 크고, 내용이 담고 있는 뜻이 높아 배울 바가 많다. 더불어 인간의 만남이란 살과 살의 만남이 아니라 영혼의 만남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어 또한 값지다. 인터넷 서점 편집자는 매일 수십 권의 책에 치어살지만 이런 책을 만나는 보람에 피곤을 잊는다.

* <다른이미지>를 누르면 책 안을 볼 수 있습니다. 화질이 조금 떨어지는데 실제의 편집상태나 인쇄 상태는 훌륭합니다.

--- 허순용(sellavy@yes24.com)26살 차이, 13년 동안의 편지

지금으로 비유하면, 적어도 사회면 톱기사 감이다. “서울대 총장, 고등고시 합격자와 편지로 열띤 토론을 주고받다.” 1558년 조선 명종 13년, 퇴계의 당시 지위는 오늘날의 국립대학 총장에 해당되는 성균관 대사성이었다. 반면 고봉은 이제 막 과거에 급제한 처지로, 지금으로 친다면 겨우 고등고시 합격자에 불과했다. 게다가 나이로 보아도, 퇴계는 58세, 고봉은 32세에 불과했다. 무려 26살 차이다. 그러나 청년 고봉은 서울로 과거보러 가는 길에, 당시의 대학자이자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던 퇴계를 찾아가, 평소 자신이 가진 철학적 소신들을 거침없이 질문하면서 논쟁을 제기했다. 고봉의 이런 파격적 행동은 오로지 열정과 패기만으로 세속적 편견을 뛰어넘은, 과감한 도전이었다. 더 놀라운 건 퇴계의 대응 방식이다. 나이로 보나 경륜으로 보나, 한마디로 도저히 맞대응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상황이었건만, 퇴계는 청년 고봉에게 기꺼이 마음을 열어 주었다. 청년 고봉의 두려움 없는 열정을 받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 급제를 달성하고 귀향하는 고봉에게 처음으로 먼저 편지를 띄웠다. 마치 첫 만남 이후 퇴계는 고봉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린 듯하다. 나이나 직위나 경륜으로 볼 때, 도저히 마주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람! 그러나 두 사람은 이렇게 시작하여 퇴계가 세상을 뜰 때까지, 13년 동안에 걸쳐 끝없는 애정과 상호 존중의 자세로 편지를 나누었다. 우리 역사상 이들처럼 유명한 사람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편지로 우정과 학문을 나눈 사실을 다시 또 발견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지식인들로 보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들은 진정으로 세대간의 차이를 극복했고, 사제간의 닫힌 관계를 확장했던 것이다.

일상의 편지로 철학을 논하다
‘인간이 지닌 네 가지 선한 단서와 일곱 가지 감정에 대한 논쟁’

그들은 당시 가장 일상적인 소통 수단이었던 편지를 통해, 삶의 사소한 문제부터 가장 첨예한 철학적 논쟁까지 모두 나눴다. ‘자기완성’이라는 숙제는 끝없는 것이고, 대학자나 청년 학자에게 모두 절실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모든 세속적 통념을 초탈하면서, 편지로 영혼의 대화를 나누었다. 또한 그들은 세속에서 관리된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는 심리적 모순을 서로 이해했고, 학자와 관리의 길을 함께 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서로 공감했다. 그들이 주고받은 고뇌는 오늘날과 전혀 다를 바가 없으며, 오히려 오늘날의 지식인들이 방기하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우리가 언제 편지로 철학을 나눈 적이 있으며, 시도해 보려고 했는가? 퇴계와 고봉이 주고받은 ‘인간이 지닌 네 가지 선한 단서와 일곱 가지 감정에 대한 논쟁’(47논쟁)은 조선조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유교 사상사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적 논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글 세대가 수려하게 풀어낸, 우리 고전의 새로운 번역
잊혀진 우리 철학자들의 편지를 온전한 한글로 다시 읽다

퇴계와 고봉, 그들은 우리들 삶의 또 다른 거울이고, 그들의 편지는 우리들이 까맣게 잊어 버린 우리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편지는 지금까지 거의 접근 불가능의 지역에 방치되어 왔다. 이제 우리는 이 시대의 한 젊은 학자의 섬세한 언어를 통해, 그들의 편지를 온전한 한글로 배달하고자 한다. 이제 한글 세대가 새롭게 읽고 우리말로 다시 잘 풀어낸, 우리의 고전을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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