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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환
김채원| 열림원| 2003.06.13 | 312p | ISBN : 8970633790
환(幻)을 소재로 한 김채원의 연작 소설이 십여 년만에 완성됐다. 89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겨울의 환'을 비롯, '봄의 환', '여름의 환', 그리고 가장 최근작이며 미발표작인 표제작 '가을의 환'이 실려있다. '환(幻)'은 사전적으로 '변하다, 미혹하다, 홀리게 하다, 허깨비'란 뜻.
환 연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이 중년의 여성으로, 패배감과 일상에서 늘 실패의 기분을 맛보며 상처와 절망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녀들에게는 삶의 어떠한 가능성도 없어 보이며 오직 불안과 혼돈만이 있을 뿐이다. 그녀들은 또한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관계하는 이들-늙은 어머니나 남편, 아이, 자매-과도 불화한다.
늙은 어머니와는 끊임없이 싸우고 남편은 이혼 후 새로운 가정을 꾸려 살고 있거나 출장 중이다. 자매는 이곳에 아닌 먼 곳에서 잊혀진 듯 살고 있으며 몇 년에 한 번씩 나를 찾아오며 살아간다. 그리고 내게 절망감을 남겨준 채 떠나간다. 내가 낳은 아이는 끔찍하게도 말을 안 듣는다.
지은이는 '환'에 자신만의 어법으로 삶과 존재의 실체 없음, 불확실성, 무정형성을 덧씌웠다. 곧 인간 존재의 실체란 한없이 불안정한 '무'의 상태라는 것. 존재의 근원과 삶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머뭇거리며 스스로를 유보하는 내밀한 독백체의 문장이 김채원 문학의 정수를 이룬다.
이처럼 환幻은 그녀의 소설 세계에서 한없이 불투명한 인간 존재의 실체와 삶의 본질이다.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온전하지 않으며 단지 하나의 영상-환일 뿐이다. 존재의 근원을 이루는 기억조차도 환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와 과거' '너와 나'를 넘어서는, 고백체의 언어
지금은, 지금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과거의 기억들과 혼재한다. 내 운명은 어머니의 운명, 그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운명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너와 멀다. 너와의 소통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우며 끊임없이 삐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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