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과 과속의 부조화, 페미니즘 (20세기 박물관 3)
사빈 보지오-발리시 외| 유재명 역| 부키| 2007.01.17 | 265p | ISBN : 8960510041
페미니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남성과 여성의 동등함을 주장하는 그 자체의 정당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논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지 않다면 민주라는 단어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공식적으로 ‘왕이 아닌 인민에게 주권’이 있음을 선언하고, ‘보편적 권리로서의 인간의 권리’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일 뿐이었고, 1791년 제정된 헌법에서는 법을 제정할 수 있는 ‘능동적’ 시민과 이들의 보호를 받는 ‘수동적’ 시민을 구분했다. 타인에게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처분을 맡기는 사람들(노동자)이나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여성)을 공적 영역에서 배제한 것이다. 결국 당시 시민적 주체를 구성하는 기준은 ‘재산’ 그리고 ‘남성적 동일성’이었다. 이것은 여성의 역할이 가족 내로 한정된다는 전제에 입각해서였다. 그러자 시민적 영역에서 배제된 사람들, 즉 노동자와 여성들이 여기에 반발하고 나섰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상당한 권리를 얻어 낼 수 있었다. 19세기 내내 전개된 투쟁의 결과 노동자들은 적어도 20세기 초반까지는 한 인간으로서, 한 시민으로서의 존엄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한마디로 19세기는 노동자의 시대였지, 여성의 시대는 아니었다.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 한 시민으로서의 여성은 관념만 형성되고 있을 뿐 실천적으로 얻어 낸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런 여성들이 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