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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악보』는 한추민이라는 남자의 노마드적 삶의 궤적 이야기이다. 또한 이 작품은 역사라는 이름의 베틀 위에 인간(들)이라는 씨실을 걸고 이데올로기라는 날실을 덧입힌 커다란 피륙 한 장처럼도 보인다. 작가 정철훈은 『인간의 악보』가 그의 처녀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능숙한 솜씨로 이 무지막지한 베틀을 다루며 이야기를 짜나간다. 한추민의 생애를 소설의 축으로 삼으면서도 숱한 등장인물들 간의 복잡한 관계나 방대한 역사적 사실들에 매몰되어 이야기의 맥락을 놓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일 없이, 그것들을 시종일관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형상화하는 쪽으로 밀어붙이는 힘을 보여준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원고지 1,500매가 넘던 분량의 초고를 퇴고에 퇴고를 거치며 1,000매 가량으로 줄이는 지난한 창작의 과정에서 그가 획득한 구성상의 탄탄한 내적 응집력과 (시인과 오랜 기자 생활이라는 그의 이력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탁월한 문장력이다. 또한 『인간의 악보』가 기대고 있는 여러 산맥 가운데 하나는 이 이야기가 작가의 가족사에 기초한 단단한 허구라는 사실이다. 훌륭한 픽션은 종종 논픽션에 뿌리를 대고 있되, 어떤 논픽션도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적인 방식으로서이다. 작가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고 있다는 점이, 작중 한추민의 생애와 작가의 세계관 및 문제의식 사이에 절묘한 균형점을 확보해 낸다. 사실(史實)에 기초한 이야기가 단순한 진술로 흐르는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기억에 의존하다 보면 자칫 감상적 사연의 기록에 그치고 말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악보』는 단지 흘러간 회고담으로, 분단이라는 상황이 낳은 여러 자식들 가운데 하나로 읽히기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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