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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회갑을 훌쩍 건넌 소설가 서정인(63)씨가 새 소설집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작가정신 펴냄)을 묶어냈다. 세 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중편 `무자년의 가을 사흘'을 비롯해 모두 다섯 개의 중단편이 묶인 소설집에서 또렷한 줄거리나 일관된 주제의식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는 어떤 인물과 사건, 상황을 등장시켰다가는 이내 딴전을 부리고는 한다.
딴전 부리기의 주된 방식은 흡사 말장난에 가까운 대화를 핑퐁 게임처럼 이어나가는 것이다. `잠적'과 같은 작품은 등장인물과 상황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문을 제하고는 거의 전적으로 두 인물이 주고받은 대사로만 이루어져 있다.
다른 작품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소설을 문장이 아니라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성싶다. 물론, 탁구공처럼 오가는 말의 폭포가 다만 말하기 위한 말함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비록 소설 전체의 기조에서는 동떨어져 있을 수 있더라도, 세상의 거짓과 어리석음을 향한 맹렬한 질타가 있고 혀를 차는 개탄이 있다. 서정인씨의 소설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심코 내뱉는 듯한 말 속에 들어 있는 뼈와 가시라 할 수 있다.
“이빨이 화가 났소. 방아 실컷 찧어봤자 노는 배만 살이 찌니, 일헌 공은 간 디 없고 뼉따구만 남았구나. 이빨인들 골낸다고 나무랠 수 있으리요.”
지난 작품집 <붕어>(1994)에서처럼 판소리 사설을 연상시키는 4·4조의 전라도 사투리는 여전하다. 자동이륜차(오토바이), 영상띠(필름), 전산기(컴퓨터), 소나기(샤워)처럼 익숙한 외래어를 생경한 우리말로 바꿔 쓰는 일 또한 서정인 소설의 독자에게는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 99/1/19 한겨레신문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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