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단 가는 길』은 이야기 돌리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환갑을 목전에 둔 초등학교 동기들이 고향에 모여 각자 겪은 전쟁의 체험을 아잇적 시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비친 전쟁은 흔히 묘사되듯 끔찍하다거나 참혹하지만은 않다. 이 소설들에서 묘사되는 전쟁은 아이들이 “호젓헌 구석에서 즐긴”전쟁이며 그리하여 순진무구한 동심과 “발랑 까진 악동세계”가 공존하는 전쟁이다. 그리하여 전쟁소설이라는 외형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이야기보다는 익살 넘치고 눈물겨운 일화들로 가득 차 있다.
「농림핵교 방죽」은 그 발랑 까진 악동들의 세계를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전쟁은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두의 심성을 피폐하게 만든다. 전장의 피냄새는 후방에까지 전염돼 아이들을 싸움질로 내몬다. 주인공 김지겸은 공부깨나 한다는 모범생이지만 결국 싸움질에 휘말려 갓 부임한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는다. 그후에도 이런저런 싸움질은 끊이질 않고 아이들은 방죽으로 떠밀려온 혼혈아의 시체에 돌을 던지기까지 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쫓아내고 혼혈아의 시체를 방죽에서 안고 나오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다. 이렇듯 이 소설은 전쟁통에 황폐해진 사람들의 심성을 아이들의 관점에서 고발하면서 그것을 통해 전쟁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물과 각성을 끄집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