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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사고로 한순간에 남의 육체로 빨려들어간 한 영혼을 화자로 이른바 '상류사회'의 위악적이고 너저분한 이면을 파헤친 <세상의 바깥>이나 신창원 탈주사건과 오버랩되어 실직한 중년남성의 시선을 통해 근원을 갈구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경쾌하고 깔끔하게 포착한 단편 <가라앉는 불빛> 또한 서사성과 사회성을 겸비한 작품들이다.
<그해 가장 길었던 하루>와 <손님>은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집필중인 연작소설 <들길>의 일부로 각각 '들길 1'과 '들길 2'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소설들에서는 감칠맛나는 우리말의 묘미가 잘 드러날뿐더러, 일제시대의 한 농촌을 배경으로 가난하지만 정겹게 살아가는 당대인들의 모습이 손에 잡힐듯 생생하다. 경성의 방직공장으로 팔려가다가 달아나 돌아오는 어린 자매의 이야기와 거렁뱅이 가짜중질을 하는 외삼촌과 어머니의 아슬아슬한 실랑이가 섬세한 자연풍광의 묘사와 더불어 읽는 재미를 한결 더해준다.
예술가로서의 자기탐구가 그로테스크하게 펼쳐지는 단편 <별똥별>, 가정의 주도권을 쥔 음악강사 아내와 되바라진 어린 딸, 건조한 원조교제의 상대인 여종업원 등의 수다 등으로 표현되는 갖가지 소음에 시달리는 무기력한 중년남자의 절규를 그린 <소음>, 우대산이란 기이한 인물을 통해 인간의 진정과 가식의 경계를 탐구하는 소설 <내 기타는 죄가 많아요, 어머니> 또한 잘 읽히면서도 섬광적처럼 번뜩이는 박범신 소설의 장점이 제대로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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