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퍼스트(Food First)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식량과발전정책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집필한 '굶주리는 세계: 식량에 관한 열두 가지 신화'(World Hunger: 12 Myths)는 세계의 굶주림과 식량문제를 본격적으로 파헤친 책이다. 그러나 단순히 전문적이고 세세한 각론만을 나열하지 않는다는데 이 책에 의의가 있다. 민중의 입장에서 서서 굶주림을 생존과 직결된 인권문제로 인식하면서, 식량을 둘러싼 국제적 현실을 치밀히 분석하고 그 정치적/경제적 맥락을 명쾌하게 해설하며 나아가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굶주림을 칼로리 섭취량 부족으로만 생각한다면 그 해법 또한 숫자(식량원조량, 경제원조 금액 등)로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굶주림은 고통, 슬픔, 굴욕, 공포 등의 인간의 감정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세계의 굶주림은 먹을 것이 모자라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자연재해 탓도 아니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도 아니다. 굶주림의 원인은 식량과 토지의 부족, 인구의 과잉이 아니라, 다름아닌 민주주의의 부족이다. 우리가 먹을 것에 관해 우리 자신이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 즉 소수 거대 자본이 식량을 독점하고 통제하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현 상황에서는 아무리 기술적인 진보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세계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민중의 굶주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장이 개방되어 자유롭게 무역을 하면 식량은 자연스럽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분배될 것 같지만, 문제는 시장이 사람들의 필요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장은 분명 돈에 반응하며, 경제권력을 집중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시장을 늘리지 말고, 소비자를 늘려야 시장이 제대로 기능을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대안이다. 이 책의 날카로운 비판은 미국의 대외원조에 대한 설명에서 두드러진다. 90년대말까지 미국의 대외원조가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결국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면밀히 조사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인도주의적인’ 원조를 시행하려면 해당지역의 자원을 해당지역의 주민들이 능동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하며, 결국 원조를 부채 탕감하는 데 쓰도록 하지 않으면 제3세계는 미국과 선진국에 종속될 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거대하고 복잡한 식량문제에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흥미로운 형식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가 굶주림과 식량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상식, 즉 ‘신화’를 하나하나 설명하고 반박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굶주림을 이해하는 방식이 그 해결책에 대한 생각을 좌우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책에 실린 열두 가지 대표적인 ‘신화’가 사태를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는 저자들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