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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다석 강의

다석 강의
출판사 : 현암사
출판년도 : 2006.03.10
지은이 : 다석학회
ISBN : 8932313768
책 쪽수 : 976 page
정가 : 38,000 원
 


그동안 우리는 서구 것은 지나칠 정도로 가치 있게 여기고 높이 평가하면서, 우리 것은 폄하하고 무시해왔다. 교육·산업·문화 등 사회 전반에서 우리 것은 외면한 채 서구 것만 공부하고 추구하며 따라가고자 애써 왔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오늘날과 같은 부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의 독자적인 사상과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는 우리도 자신감을 갖고 우리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석 선생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그 일환으로서 매우 의미가 있다.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 1890~1981) 선생은 아흔한 해의 일생 동안 구도자적인 삶을 사신 분이다. 세상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라 하여 이인(異人), 거짓됨이 없다 하여 진인(眞人)이라고 불렸다. 정양모 신부는 2006년 3월 13일 성천문화재단에서 행한 ‘다석 유영모 선생 탄신 116주년 기념 축사’에서 “다석 선생은 외래의 목소리로 나를 말하지 않고 제소리를 만들어낸 한국사상가라는 점에서 원효에 이어 세계 사상계에 우뚝 설 부족함 없는 사상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석 선생은 생명과 진리, 자연과 인생, 도와 윤리 등 참삶의 지혜에 관해 기독교 ??성경??과 동양 고전을 인용하며 설명하였다. 특히 우리말의 발음과 어원에서 본래의 뜻과 비의(秘義)를 밝히고 살려 내어 고전 해석에 활용하였고, 잊어버린 우리말들을 되살려 쓰도록 가르쳤다.
다석 선생은 그간 씨알 사상 운동을 펼친 함석헌 선생의 스승으로서 많이 알려졌다. 민권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함석헌 선생은 오산학교 시절에 다석 선생을 처음 만나 정신적으로 많은 감화를 받았고, 이후 오랜 기간을 교유하였다. 다석 선생의 제자 중에는 함석헌 선생 외에도 실천하는 행동가가 유난히 많다. 농촌 운동에 평생을 바치신 인간 상록수 류달영 선생, 기독사상의 기존 해석에 한계를 느끼고 참신앙을 추구하는 정양모 신부가 그렇다. 이 또한 관념 철학을 벗어나 실천 철학을 하게 하는 다석 선생의 어떤 힘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다석 선생이 1956~57년에 걸쳐 서울 종로에 있는 YMCA에서 행한 연경반강의 속기록 전문을 다듬어 옮긴 것이다. 선생의 사상적 깊이와 넓이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으로 다석 선생의 사상 전모가 출판되는 것은 처음이다. 기실 다석 선생의 사상은 많이 알려진 듯하지만 실제로 깊이 있는 접근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여서 대략 선생이 어떤 분인지 어렴풋하게 알려졌을 뿐 정작 철학, 사상, 종교 등 어느 분야에서도 제대로 인용될 수 있는 수준은 못 된다. 다행히 2005년 다석학회가 조직됨으로써 다석 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알리는 방편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국문학계, 디자인학계에서도 다석 선생의 독창적인 시나 문자 관련 자료를 이용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도를 간간이 해왔다. 흩어져 있는 다석 선생의 유존 자료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되면 철학뿐 아니라 문학, 언어학, 조형학 등의 분야에서도 많은 연구가 행해지고 좋은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다석 유영모 선생의 사상과 인품을 느끼고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정신적인 가치를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일생을 진정한 구도자로서 살다 가신 다석 선생의 삶과 사상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널리 알려 ‘한겨레의 참스승’으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다석 유영모에 대하여
다석 유영모는 천문·지리·서양철학·동양철학·불경·성경 등에 능통한 대석학이요, 현자(賢者)요, 우리말 우리글로 사고를 한 진정한 한국의 사상가다.
16세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32세에 조만식 선생의 뒤를 이어 오산학교 교장이 되어 그곳에 정통 기독교 신앙을 전하였다. 40대에는 월남 이상재의 뒤를 따라 YMCA의 선생이 되어 30년이 넘도록 연경반 강의를 하였다.
교회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평생 동안 ??성경??을 읽고 예수의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하였다. 예수를 절대시하고 '성경'만이 진리라는 생각을 버리고 여러 성인을 모두 좋아하였으며, 노자를 알리는 데 큰 공을 이루었다.
순수한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여 우리말이 들온말(외래어)에 밀려 없어지거나 푸대접받는 걸 몹시 언짢아하였다.
160센티미터가 못 되는 체구에 서민적 모습이었으나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눌변도 달변도 아닌데 한 말씀 한 말씀이 예지가 번뜩이는 시문(詩文)이요 진언(眞言)이었다.
얇은 잣나무판에 홑이불을 깔고 목침을 베고 누워서 잠을 잤으며, 새벽 3시면 일어나 정좌하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였다. 하루에 한 끼씩 저녁에 식사를 하였는데, 세 끼를 합쳐서 저녁을 먹는다는 뜻에서 호를 다석(多夕)이라고 했다.
항상 무릎을 꿇고 앉았으며, 맨손체조와 냉수마찰을 평생 동안 했다. 일생 무명이나 베로 지은 한복에 고무신을 신고 천으로 만든 손가방에 명상의 일기 공책을 들고 다녔다. 시계도 차지 않았지만 시간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사람은 제 먹거리는 제가 장만해야 한다면서 북한산 밑으로 이사하여 직접 농사를 지었으며, 남에게 잔심부름 시키지 않는 것을 생활신조로 지켜 밥상을 손수 부엌 마루에 내놓았다. 걸어다니기를 즐겨 북한산에 자주 올랐고 강의하러 갈 때도 꽤 먼 거리를 걸어서 다녔다.
새벽마다 지구를 사타구니 밑에 깔고 우주를 한 바퀴씩 돌면서 우주 산책을 한다면서 세계의 명산, 깊은 바다의 이름과 높이·깊이를 모조리 기억하였으며, 지구와 별들과의 거리도 외웠다.
나이를 햇수로 계산하지 않고 날수로 하루하루 세었는데, 33,200일을 살았다.
가까이 따르던 사람으로는 김교신(金敎臣), 함석헌(咸錫憲), 현동완(玄東完), 이현필(李賢弼), 김흥호(金興浩), 류달영(柳達永) 등이 있다.
감탄할 만한 명문장가였는데도 평생 다석일지만 남겼다.

다석 선생을 추모하며
“다석 유영모를 기인(奇人) 또는 괴짜라고 부른다. 그의 생활이 보통 사람들과는 몹시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진인(眞人) 또는 성자(聖者)라 추앙한다. 인격이 참되고 거룩하였기 때문이다. 다석을 공자 못지 않게 어진 분이라고 한다 하여도 다석의 인품을 아는 한 사람으로서 거부감 없이 수긍하게 된다.”―故 류달영(前 성천문화재단 이사장)
“다석 선생은 그저 한 번 척 보아도 마음이 가라앉은 분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를 언제나 꼭 지키는 분이란 것이 몸매에나 말씨에나 걸음걸이에나 늘 나타나 있습니다. 빈틈이 없습니다. 그것은 어느 순간도 마음을 헤쳐 놓음(放心)이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품이나 기지개는 물론, 너털웃음을 웃는다든가 목에 핏대를 돋워 큰 말싸움을 하시거나 하는 것을 본 일도 없습니다.”―故 함석헌
“하나님을 믿되 이처럼 ‘믿어 사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나의 생애에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극도로 완고하여 그 의지가 견고하기 철석보다, 금강석보다 더한 인물이다. 외경(畏敬)의 정이 날로 더함은 그 지조 때문이다.”―故 김교신(종교인)
“다석 선생은 잠자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거의 같이 생각한다. 잠자는 것이 선생에게는 죽는 일이다. 깨어나면 또다시 새 날을 산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은 언제나 하루살이다. 선생에게는 어제도 없고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다. 영원히 하루다.”―김흥호(전 이화여대 교수)
“다석 선생의 사상은 뜻이 깊어 알기 어렵다고 한다. 그것은 선생의 탓이 아니고 진리가 그런 것이다. 선생의 사상은 간단 명료하다. ‘육체는 무너지고 정신은 일어선다. 몸은 죽고 얼이 산다. 몸은 진선미가 아니다. 얼이 진선미다. 몸은 고노병사(苦老病死)다. 몸은 죽어 썩지만 얼은 살아 빛난다. 그러므로 몸은 죽어야 한다. 죽음이란 육체의 패망이요 정신의 승리다.(다석어록)’”―박영호(성천문화재단 다석사상연구회 회원)
“다석 선생은 동서고금에 걸친 성현들의 종교 철학 사상을 널리 섭렵하며 깊이 연구하여 그 진수(眞髓)와 요강(要綱)을 스스로 체득하고 밝힘에 따라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정신적인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무명(無明)을 뽑아 탐(貪)·진(嗔)·치(痴)의 삼독(三毒)을 이겨내어 진리 안에서 마음의 자유와 평안을 얻었다.”―서영훈(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다석은 차원 높은 동양적인 양생법(養生法)의 실천적인 귀감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속알(진리)로 다스려 속알로 다스려진 마음이 식색(食色)의 육욕을 다스리자는 것이 다석의 ‘몸 맘, 맘 몸’의 정신이다. 이것이 양생의 근원적인 원칙이다. 이 시대의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은다석의 ‘몸 맘, 맘 몸’ 사상이다. 몸 양생만 하여서는 몸이 튼튼해지지 않는다.”―이성담(한국 선단학회장)

다석 선생이 남긴 말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루(오늘)만이 영원히 있는 것이다. 오늘의 ‘오’는 감탄사이고 ‘늘’은 언제나 항상이란 뜻이다.”
“사람들은 발을 치고 사는 삶을 산다. 발을 치면 밖에서는 어두운 안쪽은 잘 보이지 않지만 어두운 안에서는 밝은 밖이 다 보인다. 자기는 어두운 쪽에 앉아서 참모습을 보이지 않고 밖에 있는 남들을 자세히 속까지 들여다보려고 한다.”
“참은 욕심이 없는 곳에 있는 법이다. 사람이 물욕에 얽매이면 삶에 고달픔이 끊이지 않는다. 눈앞에 닥쳐오는 모든 일에 만족함을 아는 이는 바로 그 자리가 선경(仙境)이다. 사람이 욕심을 떠나면 즐거울 때 즐거움의 참맛을 알고 슬플 때 슬픔의 참값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일에 정신을 다 소모하고 참으로 쓸데 있는 일에는 거의 정신을 쓰지 않는다. 시간도 재력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무엇이 쓸데 있는 일인가를 아는 것이 덕성(德性)이요 진리파지(眞理把持)다. 진리파지란 사람이 이룰 것을 이루고 가질 것을 가지는 것이다.”
“몸은 죽지만 얼은 죽지 않는다. 얼은 영원한 생명이다. 얼이 몸을 이겨야 성숙한 사람이다. 죽음은 몸의 패망이요 얼의 승리다. 얼의 나가 세상을 이겼다는 것이 십자가다. 자기의 죽음을 지켜 볼 수 있는 것이 얼이다. 자기의 죽음을 보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정신이 꽃 핀 정신이요, 얼을 깨달은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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