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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짧은역사 “처음 쓰는 그림자의 역사”,
서양의 재현의 역사에 대한 미학적·문화사적 접근
고대 그리스의 시키온에 살았던 도공 부타데스의 딸이 한 젊은이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먼 길을 떠나게 되었을 때, 부타데스의 딸은 자기 애인의 얼굴에 램프 불빛을 비추어 벽에 그림자를 만들고는, 그 그림자의 외곽선을 따라 그렸다.
(플라톤은) 태고의 인간이 동굴에 갇혀 있다(고 상상한다). 그 태고의 인간은 자신이 갇힌 감옥의 안쪽만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그 벽면에는 동굴 밖 실체의 그림자들이 투영되어 있고, 그는 외부의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한다. 그는 몸을 돌려서 태양의 세계에 직면해야만 진정한 지식에 다가갈 수 있다.
아름답고 다소 낭만적이기까지 한 ‘부타데스의 딸 이야기’에서 회화가 탄생한다. 회화는 인간의 ‘그림자’를 선으로 그린 데서 기원했다는 것, 이 말은 곧 서양에서 예술적 ‘재현’의 탄생은 ‘그림자’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타데스의 딸은 대체물을 창조함으로써 떠나가는 애인의 이미지를 ‘그림자’로 잡아두려 하고 있다. 딸의 그림(재현)이 그림자에 근거를 두었던 근본 목적은 그림자를 ‘기억(사랑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한 보조물, 다시 말해 부재(떠나간 애인) 중인 것을 자신의 눈 앞에 현존하는 것으로 ‘재현’하기 위함이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플리니우스(23~79, 부타데스의 딸 이야기)와 플라톤(동굴 이야기)은 모두 기원에 관한 신화를 다루고 있다. 플리니우스는 ‘예술의 신화’를, 플라톤은 ‘지식의 신화’를. 두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예술적 재현의 탄생과 인지적 재현의 탄생에 관련된 신화 모두 바로 ‘투영’이라는 모티프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최초의 투영은 어두운 지점, 바로 ‘그림자’를 말하는 것이다.
두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그림자와의 관련이 서양의 재현의 역사를 특징짓는다. 《그림자의 짧은 역사: 회화의 탄생에서 사진의 시대까지》는 이처럼 그림자를 통해 서양의 재현의 역사의 이정표들을 추적해 나가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림자의 역사를 따라가 보는 것은 인간 의식의 역사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의식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의미와 신호로 가득 찬 그림자의 세계는 이제껏 수면 아래 잠겨 있었던 인간 의식의 이면을 드러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림자, 현존과 부재 그 변증법적 대립쌍의 관계 따라잡기
‘그림자’는 현존과 부재를 동시에 담고 있는 이중의 기호다. 그림자는 실재하는 대상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현존하는 것이고, 반면에 그 그림자에는 그 대상이 실재하지는 않기 때문에 동시에 부재의 기호인 것이다. 그림자는 그 그림자를 만들어낸 대상을 ‘상기시키는 것(기억)’, 즉 부재하는 대상을 ‘재현’하는 아이콘으로 기능한다.
그림자에 대한 이 도발적이고도 ‘짧은’ 역사는, 이 주제에 대해 플리니우스와 플라톤이 전하는 이야기들에서 시작한다. 미술의 기원에 대한 플리니우스의 신화는 예술적 재현의 탄생을 어느 코린트 도공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간주하고 있고, 지식의 기원에 대한 플라톤의 신화는 유명한 동굴의 비유 속에서 철학자가 제시하는 것인데, 이 두 이야기는 모두 그림자-그 존재에 의해 부재를 확인시키는 어두운 지점-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또한 그림자는 빛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하나의 사실로, 신체의 현존하는 ‘타자’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그림자는 자기-재현의 한 형태로까지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의 신학자이자 인상학(人相學) 창시자인 요한 카스파르 라바터(1741~1801)는 영혼의 진정한 반영은 얼굴 그 자체가 아니라 얼굴의 그림자라고 했다.
“모든 화가는 자화상을 그린다”, ‘그림자’로 그려진 예술가들의 자화상
“만약 회화에서 그림자가 없어진다면?”
“우리가 보는 사물의 형상들은 평평한 것처럼 보이며 주위 풍경에 흡수되어 버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초상화 역시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예로 들면서, 예술이 현실을 재현할 때 그림자가 미치는 효과에 대해 밝히고 있다. 특히 파블로 피카소(<피카소의 실루엣과 울고 있는 여자아이>, 도판 31, 158쪽), 클로드 모네(<릴리 연못 위에 드리워진 모네의 그림자>, 도판 27, 146쪽), 앤디 워홀(<자화상>, 그림 15, 264쪽) 등의 작품을 통해서는, 예술가들은 자기 재현, 즉 자기 반영으로서 그림자를 자신의 작품에 담았다고 말하고 있다.
<피카소의 실루엣과 울고 있는 여자아이>에서는 그림의 이미지들을 ‘창조하는’ 사람이 그림자 형상의 ‘피카소’가 아니라, 이미지들에 의해 그림자 형태로 ‘창조되고’ 있는 것이 바로 피카소다. <릴리 연못 위에 드리워진 모네의 그림자>에 드리워진 그림자 형태는 자화상이 매우 적은 모네의 후기 자화상에 다름없고, 아예 <자화상>이라 이름 붙은 워홀의 작품에는 워홀의 진짜 얼굴보다 옆얼굴 그림자가 더 크게 표현되어 있다.
저자에 따르면, 독일 표현주의 영화 제작자들은 ‘투영’의 본성에 -때로는 악의적인- 의미를 덧붙여 그림자를 은유적으로 이용했다. 워홀은 66점의 <그림자들> 연작으로 철저한 인간적 공허함을 대단히 실제적으로 드러내는 데 그림자라는 아이디어를 이용했다. 또한 요제프 보이스는 <액션 데드 마우스>라는 제목의 사진들로 남아 있는 샤먼적인 해프닝을 통해 자아의 무시무시하고 강한 분신령(分身靈)으로 그림자를 탐구했다.
저자는 보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끄는 여러 예술작품들을 르네상스 예술론의 주요 주창자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1404~72)와 화가 조르지오 바사리(1511~74) 등의 예술론에 등장하는 나르키소스 신화와 관련된 그림자의 본성과 연관시켜 살피고 있다. 이와 함께 저자는 프랑스 태생 독일시인인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1781~1838)의 <페터 슐레밀 이야기>, 월트 디즈니의 영화 《피터팬》, 콘스탄틴 브랑쿠시가 자신의 작품을 찍은 사진 등 다양한 예술장르에 등장하는 그림자의 의미들을 낱낱이 추적하고 있다.
그 결과, 대단히 독창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 책은 서구 예술에서 ‘재현’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지점을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서양 문화사의 x파일인 ‘그림자’에 대한 첫, 그리고 심층적인 해독서!
고전(古典)들에 따르면, 미술은 벽에 드리워진 사람의 그림자 윤곽을 실루엣의 형태로 잡아두기 위해 사람의 그림자를 처음 따라 그렸을 때 탄생된 것이기 때문에, 그림자의 존재는 미술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이 대단한 역작을 통해 저자는 그림자를 그려왔던 역사와 그 의미를, 서구 예술가들을 따라다녔던 가장 어려운 기술적, 상징적 도전들 가운데 하나로 풀이한다.
저자는 바사리와 첸니니 같은 르네상스 화가이자 작가들의 글과 설화, 동화, 신화 그리고 니콜라 푸생과 현대의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요제프 보이스 등 여러 대가들의 미술작품뿐만 아니라 표현주의 영화와 사진, 만화와 광고, 아동심리학 등을 끌어들여 문화 전반에 나타나는 그림자의 의미를 재미 있고 설득력 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그림자가 부정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서양 문화에서의 재현에 관한 담론의 중심에 있는 그림자에 대한 숙고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진정한 시도는 그동안 없었다. 《그림자의 짧은 역사: 회화의 탄생에서 사진의 시대까지》는 서양 문화사에서 엑스 파일과 같다고 여겨져 온 그림자의 의미와 상징성을 맨 처음으로, 그러면서도 심층적으로 해독하는 책이다.
책에는 이집트 벽화에서 샤넬의 광고에 이르기까지, 중세 말기의 성화(聖畵)에서 마르셀 뒤샹의 수수께끼같은 작품까지, 니콜라 푸생의 자화상에서 요제프 보이스의 퍼포먼스 사진까지, 성모를 그리는 성 누가에서 스탈린을 그리는 사회주의의 요정에 이르기까지, 그림자를 팔아버린 슐레밀 이야기에서 잃어버린 그림자를 다시 꿰매는 피터팬 이야기까지 컬러 및 흑백 도판 110개가 수록되어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스페인, 폴란드, 루마니아 등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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