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대한민국 ‘인권’을 이야기하다
2001년 11월 출범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 문제나 검찰, 경찰 등 국가 권력에 의한 피해자의 인권 보호, 보호시설이나 교도소 등 구금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 문제, 사생활 영역 보호, 국제인권협약의 이행 등 대한민국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진집이나 단행본, 영화, 애니메이션 등 여러 문화 매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과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그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월간 《인권》의 ‘길에서 만난 세상’ 꼭지를 기획하여 우리 사회 약자들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많은 약자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조차 누리지 못하고 차별받고 소외되었으면서도 자신의 인권을 인식하지도 주장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2004년 2월부터 2005년 7월까지, 글쓴이들은 1년 넘게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차별받고 소외된 우리 사회 약자들을 직접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였고, 그 기록을 다시 한 번 더 다듬어 《길에서 만난 세상》으로 펴내게 되었다.
차별받고 소외된 현장을 찾아가다
이 책에서는 이제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진폐증이라는 직업병에 걸린 채 나라와 가족에게 버림받고 홀로 죽음을 기다리는 광부들, 0.3평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일하면서 몸도 마음도 병든 노동자들, 생태계 보호라는 미명하에 생계의 위협을 받는 어부들, 1970년대보다 더 열악한 조건에서 중국인 노동자들과 경쟁하고 있는 여성 봉제 노동자들, 일제 시대 때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한국에 살게 되었지만 한국과 일본 양쪽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홀로 쓸쓸히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일본인 처, 감염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병인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편견 때문에 병이 다 나아서도 섬에 갇혀 살아야 하는 한센인 등. 또한 이 책은 기본권조차 박탈하는 0교시 문제나, 문화적 소외를 겪고 있는 농촌 청소년 문제 등 우리가 미처 인권 문제로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그 실상을 들려준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취재 대상을 정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작가들이 취재 대상을 결정했다. 박영희 시인이 취재한 광부, 보안관찰처분대상자, 탈학교 청소년 등은 그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 자신이 한때 탈학교 청소년이었고, 광부였으며, 일제치하 광부징용에 관한 서사시를 쓰고자 방북한 일로 7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한 뒤 보안관찰처분대상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수연 작가는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이라크 파견 작가로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 다녀온 바 있고, 꾸준히 이슬람교와 여성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무슬림이라든가, 미성년 비혼모, 아시아 이주 여성, 여성 봉제 노동자들을 취재하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월간 《인권》 연재 당시에는 담지 못했던 ‘못다 한 이야기’ 를 통해 작가들이 취재 과정에서 느낀 점들과 취재원들의 뒷이야기도 담았다.
복지와 인권의 속도를 앞서는 자본의 속도에 대한 경고!
오늘날 전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이웃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아픈 이웃들을 모른 체한다. 이런 자본주의의 속도를 앞지르기 위해 복지와 인권의 속도가 더 빨라져야 한다고 이 책은 우리를 채찍질한다.
인권 문제는 시민운동가나 전문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나 자신의 인권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권도 존중하고 지켜나가는 연대의식을 가져야만 나의 인권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