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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씰크로드'라는 이름은 120여년 전 처음 등장한 이래 오랫동안 사람들을 매료해왔다. 독일 지리학자 리히트호펜(F. von Richthofen)이 처음 만들어 썼으니 이 이름 자체가 그 연구사의 기원을 밝혀주는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씰크로드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 인류문명의 개화와 궤적을 같이하며 2천여 년이 넘도록 말 그대로 문명탄생의 산실이자 문명발달의 원동력으로 기능해왔다. 씰크로드에 대한 연구가 문명교류사의 핵심적 위치를 점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씰크로드 연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중앙아시아 탐험과 2차대전 전후에 진행된 씰크로드 연변의 일련의 고고학적 발굴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시발점에 불과해서, 씰크로드 전체를 통관하는 진정한 학적 정립은 이제까지 이뤄지지 않은 과제였다. 문명교류사 연구가 주로 교통사나 지역학에 편중해온 데다 씰크로드가 포괄하는 시ㆍ공간적 방대함과 교류상(相의) 복잡다기함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 책 『씰크로드학』은 여러 개념들을 정의하고 엮어세움으로써 문명교류사 연구의 주된 일부로서의 씰크로드 연구를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하려는 시도이다.
"씰크로드라는 환지구적(環地球的) 통로를 통해 진행된 문명간의 교류상을 인문·사회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어디까지나 씰크로드를 통한 제반 교류상의 골격을 총론적으로 규범화함으로써 고유의 학문적 체계와 범주를 갖추어야 할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저자가 볼펜 잉크가 녹아 글씨가 뭉개지는 불볕더위와 손발이 얼어 터지는 혹한의 겨울을 이기며 정리한 3년여의 연구메모를 바탕으로 집필한 것이다. 재직중이던 단국대 대학원 사학과의 '동서교류사연구' 과목이 저자의 구금으로 폐강되자 1998년 3월 초 영어(囹圄)의 몸으로 시작한 '서신강의'가 씨앗이 되었다. 우여곡절로 서신강의가 곧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갖은 어려움을 무릅쓴 집필이 가능했던 것은 민족과 인류의 생존은 문명의 공유와 상보적 상호의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세계적으로 자랑할 문명교류사 연구자인 저자의 놀랄만한 박식에 이만한 사명감과 열정이 더해짐으로써 이제 우리는 이 분야의 독보적인 역저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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